불전(佛典)에서 기원하는 업보(業報) 즉,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생각이나 말 또는 행동으로 지은 죄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자신이나 그 자손이 죗값을 치르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종교적 의미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자업자득(自業自得),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업보를 많이 쌓는 사람이 똑같이 당했을 때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업보 청산이라는 말로 쓰인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정당은 있는데 정치가 없는지가 이미 오래되어 국민들은 지겨울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다. 한마디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傲慢)과 무지한 독점의식에다 독선 정치에 빠져 국가와 국민은 있는데 정치는 전무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하는 것 없이 위선의 탈을 쓰고 정치를 한답시고 부끄럼도 염치도 없이 꼬박꼬박 거액의 국고만 넙죽넙죽 삼켜버리고 있지 않는가?
모름지기 국가나 사회조직에 정상(頂上)의 지도자라면 남다른 덕성(德性)과 인격(人格)이 있어야 함에도 기본적 소양(素養)마저 없는 자들이라 오로지 정쟁에 남의 탓에다 위장술로 사회를 점유하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불만(不滿)은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탓이요
오만(傲慢)은 아래를 보고 위를 보지 못한 탓이니
비우지 못한 욕심과 낮추지 못한 교만으로 자아(自我)를 다스리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볼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상대를 헐뜯기보다 칭찬을 즐길 줄 알아야 미래가 보장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 앞에서 연기하는 일부 지도층이나 위정자들을 보면 말은 번듯하게 하면서도 행동이 반듯하지 못한 위장술에 그치는 자를 수없이 보았고 역겨워도 국민들은 그 꼴을 보고 있다.
얼굴이 곱고 잘 생겼다고 곧 마음씨가 고운 것도 아니듯이 지위가 높다고 반드시 인격이 높은 것은 아니다.
지도자의 품격은 말이 아닌 정직함과 매사에 곧음이 있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아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겸손은 지성(至聖)인의 미덕(美德)으로 희망적이지만 창피(猖披)하게도 공자나 퇴계, 다산이 무색하리만큼 자칭 위대한 허장성세(虛張聲勢)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떼를 지어 활보하고 있으니 국정이 정체되고 국혼이 없는 무아지경이다. 돈과 부(富)를 쌓았다고 덕(德)을 쌓은 것은 아니다. 있어도 인색한 자가 있는가 하면 없어도 후한 사람이 있다.
어진 사람은 그 도량(度量)이 큰 나무와 같아서 제 그늘로 쉼터를 제공하게 된다. 국민들은 그런 도량이 있는 바른 지도자의 품이 그리워진다.
선동과 거짓을 일삼는 사람은 세치의 혀(舌)로 불신을 낳고, 술수에 능한 사람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판다는 진리를 역사실록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선행을 베풀면 업장이 소멸되어 행복한 삶이 열리고 분별없이 악한 행동을 하면 언젠가는 벌을 받아 뿌린 대로 불행을 맞게 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사인데 독점, 독식, 독선이 없는 나눔에 균형 있는 동행이 바로 복되고 아름답게 사는 인생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