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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재외동포 칼럼]중앙과 변방 언론

김삼오 박사
지난 반세기 동안 크게 달라진 한국의  언론 환경의 하나가 필자가 지금 기고하는 크게 늘어난 지방
, 지역, 마을 또는 시민 신문이다어휘가 풍부한 영어로 말하면 Community, Regional, Local 또는 Village newspaper. 여기 호주나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라면 State newspaper(/신문)이 있다.

종이가 아니라 인터넷 언론이 더 우세한 요즘 왜 신문이냐고 딴지를 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언론학을 신문학이라고 부른 때가 있었다. 그후 왜 신문뿐이냐는 반론이 있어 신문방송학으로 바뀌었다. 이점 영미인들은 우리와 좀 다르다.

그들은 아직도 언론을 저널리즘 말고 보통 프레스(The Press)라고 부른다. 원래 언론이 활판 인쇄로 시작한 데 기인한다. 미국 NBC뉴스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이 Meet the Press(언론과의 만남)인데 명칭을 고치자는 미국인이 없다. 언론 관련 단체들이 모인 서울의 프레스센터를 이름 바꾸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언론센터나 신문방송센터로 고치자는 제안이 안 나오리라는 법도 없겠다.

여담이 된 건지 모르겠다. 필자의 과문인지 몰라도 그 많은 한국의 언론학자 가운데 지방 언론을 깊이 연구한 이가 있어 보지이지 않는다. 권력과 재정이 집중된 서울의 중앙 언론에 대비해서  취약한 지방언론의 실상을 기술하는 정도가 전부가 아닌가 한다.

내가 보기에 지방 언론에 적용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및 언론학 이론이나 문헌은 다문화주의 사회인 영미국가에서의 지역신문의 하나인 이민자신문(The ethnic newspapers, 한국어로 번역할 경우 동포신문)과 국제간 정보와 영향력의 흐름 (The flow of information and influence between countries)연구에 관련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의 지방 신문과 관련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참고가 될까 해서 오늘은 필자가 시드니에서 발표했던 인문학 강의 중 나왔던, 이와 관련된 내용을 줄여 옮겨 본다. 동포신문의 문제는 해외 한인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줄 믿는다.

호주 사회의 일부인 한인사회가 호주 정부와 주류(전체)사회를 향하여 전해야 할 메시지, 말하자면 우리의 정당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보와 영향력의 흐름이 쌍방형이 못되고 일방향 형인 게 문제다.

이는 거주국과 소수민족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간, 중심 국가와 변방 국가 간, 한 나라 안에서도 중앙과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이는 학문적 연구 과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연합이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새 세계정보질서’ (The  New World Information Order)라는 기치 아래 간행물로도 발간하고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오래 강조해온 사업의 하나다.

국가 간 또는 다른 주체 간 정보와 영향력의 불균형이 크면 왜 문제인가? 한국에서 늘 큰 사회 이슈로 떠오르는 강자와 약자 간  불균형과  갈등 관계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그게 오래 용인되어 온 것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메시지가 강자에서 약자 쪽으로만 흐르는 사회의 구조 때문이다.      .

이 정보와 영향력의 일방향적 흐름은 뉴스의 경우라면 한층 더 선명한데 한쪽에는 큰 뉴스가 많고 다른 한 쪽에는 이렇다 할 뉴스가 없으니 그런 것이 상당 부분 많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약한 쪽도 좋은 이슈를 만들고 전달 수단을 발전시킨다면 달라진다. 가령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세워진 알자지라(Al Jazeera) 영어 방송은 아랍 세계를 대변하는 CNN으로 불리고 있다.

한인계 국제 칼럼니스트

영어가 세계어가 된 지금 한국은 세계 여론의 형성에 기여를 못하고 있다. 영어로 나가는 아리랑 텔레비전, 영문판 연합뉴스, 3대 영자 신문이 있으나 모두 고만 고만이다. 뉴스 기사는 몰라도 뉴욕타임스, 워싱턴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런던타임스 등 국제매체에 전재될 만한 칼럼을 쓰거나 거기에 기고할 만한 칼럼니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친한파 언론인, 친한파 학자에 매달리는 건데 그들이 우리의 깊은 애로와 실정을 얼마나 잘 알겠나.

필자가 그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해봐 잘 알지만 그런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한국정부가 따로 머리 쓰고 투자한 적이 없다. 거기 영어로 쓰는 기자와 언론인은 자국어 언론인만큼의 대접도 못 받았으니 갈 데 없는 사람이나 오래 남지 모두 떠나버리는 서글픈 현장이었다.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영문 연합뉴스를 키우기 시작했으나 그 질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언어의 불평등

여기 한인들이 영어 장벽으로 주류사회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못한다면 3등 국민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이건 인종이 아니라 언어의 불평등(linguistic disparity) 문제다. 영어가 짧으면 많이 배운 우리 어른도 호주 아이와 대화할 때 상대는 대학생, 이쪽은 초등학생의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1세 한국인에게 영어를 통달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는 2, 3세가 풍부한 한인 사회에서 이들과 1세가 힘을 합쳐 집단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혹자는 우리가 호주 정부나 주류사회를 향하여 못하는 말이 뭣이며, 한마디로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다. 문제를 못 보거나 안 보는 사람에게 문제는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1923년 일본에서 있었던 관동대지진 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느니 수돗물에 독약을 탔다는 낭설이 퍼져 적어도 6,000명이 죽창으로 찔려 죽었다. 당시 조선인 사회에 제대로 된 지도자와 조직이 있어 정부 요로와 주류 언론에 접근, 의사 전달(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왔다면 이런 참상이  일어났겠나?

해외 선진국에서, 그리고 지금의 한호 관계에서 이런 일은 상상 못하지만 언젠가 상황이 바뀌고 우리가 벙어리처럼 지낸다면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인들과 함께 아시아인으로서 봉변을 당할 일은 대단히 많다.

그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불균형은 고국과 해외 한인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아주 심각하다. 고국에서 한인사회로 흘러 들어오는 메시지가 100이라면 여기에서 고국으로 가 닿는 메시지는 1이나 될까 말까이다. 여기에서 보도 자료나 건의서를 보내는 사람과 단체가 드물지만 보내도 싣는 큰 고국 매체는 없다.

언어 때문만이 아니다. 이 또한  앞서 말한 강자와 약자의 관계다. 해외 한인과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만나 하는 모임이 있지만 밥 얻어먹고 그쪽 이야기만 듣고 돌아오는 일방향 형 커뮤니케이션이다. 이쪽이 좋은 이슈와 어젠다를 내놓아도 전달될까 말까인데 그런 노력마저 없으니 더 그렇다.

김삼오 박사 프로필

호주동포(한국 국적 재취득)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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