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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해왔는가

지난 8일 주한 중국 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대사가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대담 중에 한미동맹외교를 비판하면서 중국의 패배에 배팅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적 내정간섭을 한 발언으로 국내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있듯 땅덩어리가 한반도의 50배에 인구 14억의 대국답지 못하고 형편에 따라 모략이나 수단으로 겁박 주는 권모술책(權謀術策)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차제에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어떤 못된 짓을 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추려보면 중국은 우리에겐 천년의 원수다. 중국이 503년간, 일본은 36년을 자기네들의 지배국으로 군림해왔다. 일본에 위안부가 있다면 중국에는 50만에 이르는 환향녀(還鄕女)가 있다. 걸핏하면 처녀들을 중국 놈들이 공물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사실상 중국은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 때부터 1895(하관)시모노세끼 조약 때까지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나라 이름도 명나라에 가서 조선과 회령 중에서 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최영 장군의 명나라 정벌이 맞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관(慕華樓)을 세우고 영은문(迎恩門)의 전신인 홍살문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오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때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영은문으로 이름까지 바꿔 세운 것이다.

시진핑이 트럼프와 정상회담 시에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우리 민족을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 이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하면 치욕적으로 조선의 왕정은 무력을 포기하고 중국 황제가 승인을 해야 왕이 될 수 있는 나라꼴로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간 나라였다.

그런 왕정으로 하여 백성들은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진이 빠졌다.

뿐만 아니라 사신들의 서열이 조선왕보다 높았기 때문에 사신이 한번 뜨면 왕정은 물론 백성들도 몸살을 앓았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자들이 조선에 와서 본전의 몇 배를 뽑아갔으니 백성들의 삶이 오죽이나 했을까?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한다는 명분에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바로 영은문이었다.

드디어 1895년에 발발한 일본과 청의 전쟁에 패한 중국이 18954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의 이등박문과 중국()의 이홍장 간의 조약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선언함으로서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 가 있었다.

그리하여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독립하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만 아는데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이나 독립문은 36년간 지배당해 온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3년 동안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만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민주화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말았다. 그들은 19506.25 남침을 김일성과 모의하고 우리 국민 수십만을 살상한 마오쩌둥(毛澤東)을 존경한다는 엉터리 대통령까지 등장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오점을 남겼다.

그러고도 독립문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오해가 희극이 돼버린 사례가 20183.1절 기념식을 마치고 대통령이 독립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니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막힌 장면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미국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8.15만 광복절이 아니라 4.17도 광복의 날이니 우리 민족에게는 두 날을 깊이 새겨 바른 역사의 수난사를 자손 만대에 고스란히 전해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정 용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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