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선비 정신은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을 만든다”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년을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잃지 않는다.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번을 찍혀도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 노계 박인노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像村

) 신흠의 시로 퇴계 이황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조선 후기 사림(詞林)에서 유명한 시 구절이다.

신흠(申欽)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사람으로 광해군이 등극하자 파직되어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 대제학과 영의정까지 오른 선비다.

그는 장남이 선조의 셋째딸 정숙옹주와 결혼을 앞둔 터라 주위에서 좁고 누추한 집을 수선할 것을 극구 권고 받았지만 집이 훌륭하지 못해도 예(禮)를 치르기에 충분하다며 끝내 기둥하나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청렴하였다.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 가면서도 항상 거문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그 향기를 팔아 안락(安樂)을 추구하지 않는다.”

라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가난은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청빈 속에 살아가는 선비의 기개와 의리를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는 올곧은 선비의 지조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부 선비(학자)들과 비교가 된다.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번을 이지러지더라도 그 본래의 성질이 결코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번을 찍히더라도 또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이 구절은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백번을 고쳐 죽더라도 부정과 불의에 끝까지 저항한 선비의 충절을 느끼게 한다.

“선비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대의를 위해서라면 권력 앞에서도, 돈의 유혹에도 절대 무릎을 꿇지 않으며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버릴지언정 기상을 잃어버려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절대적 사명일 것이다.

국정에 있든 재야에 있든 항상 나랏일과 국민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세상이 찌들고 환경이 달라져도 선비의 위상은 변질되지 말아야 미래가 있는 법이다.

우리의 자화상을 보면 인간본성과 본래의 직분을 갈고 닦으며 정의롭고 공정한 배려와 나눔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는 선구자이기도 한데 도대체 부끄럼을 모른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성찰하고, 남을 강제로 이끌기보다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으면서 세상을 따라오게 하는 혜안(慧眼)의 중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진리도 모른다.

권력과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선비정신이야말로 미래 한국의 지도이념으로 삼아 인권이 있는 진정한 자유민주국가로서 국민과 함께 공존할 때만이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 받는 길이다.

지금 세계로부터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등에 대한 시선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는 즈음에 있어 국내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연일 중요 언론에서도 법테크, 조 재테크 또는 법 미꾸라지라 하는 조소와 함께 그 몰골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곳 저 곳에서 ‘아 옛날이여’ 하는 탄식이 연일 터지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성서 빌립보서 2장에 보면 ‘모든 일은 원망과 시비를 없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했다.

상촌 신흠(申欽) 선비의 사도 정신이 참교육에 지축이 되었으면 한다. 변질과 오염된 선비정신이 제 길을 찾아 국가백년대계 자산으로서 미래에 영광을 안겨줄 위대한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9년 8월 22일

논설주간 정 용 구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