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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박사 |
매우 유용한 연장인 칼도 잘 못쓰면 흉기(凶器)가 된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서방 선진국에서 도입한 그 많은 좋은 제도도 마찬가지다. 제도는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 글을 이렇게 여는가? 오늘 우리나라 정치의 일상이 된 여론조사(Public Opinion Poll)에 대하여 몇 마디 써보기 위하여서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은 한국에서도 팽배하므로 그건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는 정권이나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세력에 의하여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잘 활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대선이 다가오면서 더 그럴 것 같다. 내가 사는 호주는 권력이 특정 정치인에게 집중될 수 없는 내각책임제 정부여서도 그렇겠지만, 수시로 발표되는 실세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 추이를 바라보고 일희일비 누군가 널 뛰듯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국민들은 늘 조용하다. 그야말로 미국의 정치 용어로 Silent Majority(조용한 다수)다. 총선 투표일은 언제나 토요일인데 선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지나간다. 통치자나 정부 하나 바뀌어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알다시피 여론조사는 세계적으로 갤럽(Gallup)이란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아이오와(Iowa)주 출신 언론학자였던 미국인 George Gallup(1901~1984)이 1935년 미 여론조사연구소(The American Institute of Public Opinion)를 개설, 이 분야의 개척자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갤럽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하나를 포함해서 10여 개 동종의 민간 기구들이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 조사(Approval rating), 특정 정부 정책이나 일반 사안에 대한 찬 불찬, 호 불호 조사, TV 시청률, 시장 조사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여론의 향방을 수시로 발표하는 데 갤럽과 그 외 미국의 주요 조사기관들의 조사. 분석의 공법과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도가 디자인된 대로 작용하자면 뭣보다 그걸 운영하는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직한 사람이 많은가 적은가는 그들이 만든 사회문화환경이 결정한다. 내가 보는 한국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될 여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언론 관련이다. 고도로 산업화되고 복잡다단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대중매체가 알리는 뉴스와 현장과 논평을 읽고 보고 들어서 갖게 된다. 특히 그들이 직접 접할 수 없는 공공 이슈에 관한 한 거의 전적으로 그렇다.
가령 청와대, 국회, 군부, 외교가 안에서 매일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지식과 판단은 거의 대중매체가 보도한 대로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사실은 공공 이슈에 대한 여론은 대체적으로 주요 언론의 생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가 공정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면 여론 조사 결과도 불공정하고 부정직하다. 이런 대중매체의 역할을 설명하는 언론학 이론이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the agenda setting function of mass media)과 미디어 의존 이론 (The dependency model of mass media)이다.
다른 하나는 여론 조사 기관의 독립성이다. 언론과 여론조사소와 같은 기구는 민간 기업일지라도 그 역할로 봐 공익단체로서 독립성이 생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 정경유착이란 말이 생긴 대로 한국에서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나 기구가 흔치 않다. .
여론조사 기관은 용역을 정부에서 직접 받기도 하지만 아닐 때도 자금의 원천은 정부 예산이거나 다른 공금인 게 보통이다. 언론이 경영상 이유로 외부 압력에 굴복하듯 여론조사 기관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권 아래에서였던가, 청와대 실세를 지낸 언론인 출신 인사가 한 유력한 여론조사 기관의 회장직을 맡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여론조사 기관의 인원 가운데 과거 정부와 관련을 가진 인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론조사의 무용론을 펼치자는 게 아니다. 돈은 누구의 돈이 됐든 결국은 나라 돈이다. 비싼 돈 들여 어렵게 하는 여론조사가 나라의 이익으로 돌아가자면 그 기능을 맡는 업체와 그 결과물을 보도하고 해석하는 언론, 그것을 이용하는 정부와 정당과 단체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국민 모두가 정직하거나 현명해야 한다.
김삼오 박사 프로필
호주동포(한국 국정 재취득)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skim1935@gmail.com